비행 청소년

써보기 2017. 12. 21. 20:24 Posted by 진선애

비행청소년

오랫동안 우리 집 앞은 공터였다. 아버지가 우리 집을 짓기 시작하던 때는 우리 집 옆 터도 텅 비어 있었다. 우리 집이 지어지기 시작하고 얼마 후 옆의 공터에도 누군가에 의해 집이 지어 졌다. 두 집은 나란히 서로의 자태를 비교, 자랑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이란 형체를 갖추어 갔다. 우리 집 앞터는 정말 오랫동안 빈 채로 있었다. 내가 이 집에서 유아기를 벗어나고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에 갈 때 까지 공터는 나의 놀이터였다. 거기서 동네 아이들은 모여서 야구를 하고 축구를 했으며 쥐불놀이도 했다. 동네 강아지들이 아침 마다 응가를 해결하러 나오는 장소였고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아버지가 천막을 쳐서 손님들을 맞이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공간을 지키는 유일한 것은 가로등이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노란 빛을 토해내며 밤의 공터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그 노란 빛을 등으로 받으며 퇴근 후 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간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3층 건물이 세워진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참 아쉬워했다. 아버지는 항상 우리 집을 자랑하셨다. 넓은 정원이 있었으며 유럽 양식을 가져다 우리 식으로 변형하여 지었고 신기술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나도 우리 집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동네에서 제일 예쁘고 멋진 집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되었다. 우리 집 3층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우리 학교 짱이 이사를 왔다. 그 건물 주인이란다. 짱의 아버지는 금은방을 하셨다. 엄마가 누나랑 수군거린다. 경제사범이라면서. 그런 아버지를 둔 우리 학교 짱이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단다. 엄마는 짱이랑 놀지 마라는 경고를 하셨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는 자기 공부에 바빠서 나는 안중에도 없다. 나는 짱이 정말 멋있어 보인다. 무엇을 해도 다 폼이 난다. 짱은 어느 새 학교 짱일 뿐만

아니라 나의 짱도 되었다. 나는 짱이 하는 모든 것을 다 따라하고 싶다.

아버지, 돈 좀 주세요?”

그 무렵부터 이 말이 나의 십팔번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가 미워졌다.

돈 달라는 나의 요구를 거절하고 나를 붙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

제발 걔랑 놀지 마라.”

친구 따라 강남 간다잖아.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지? 이게 뭐니?”

지금 니가 그러고 놀 때야. 공부해야지. 엄마 아빠가 니 의대 보낼 거라고 기대하시던데, 너 왜 그러니?”

나는 식구들의 충고가 정말 듣기 싫다. 짱이 내 식구였으면 좋겠다. 나는 짱이 입는 옷을 따라 입었고 짱이 하는 모든 행동을 따라 했으며 짱이 시키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춤이 추고 싶다. 나의 짱은 춤꾼이다. 짱은 춤을 추면 더 멋있어 보인다. 나는 춤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짱만큼 멋진 춤을 출거다.

어느 날 짱이 하얀색 구두를 신고 왔다. 짱이 신은 하얀색 구두는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같다. 어머니를 졸랐다.

나도 흰 구두 사주세요? 제발, 어머니 나도 흰 구두 사주세요?”

어머니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놈아. 니가 중3이다. 3이 무슨 백구두니, 백구두는 어른들도 잘 안 신는 구두야!

이눔아, 백구두는 양아치들이나 신는 구두야. 제발 정신 차려라. 니가 왜 이러니?”

어머니는 이 말과 함께 내 등을 철썩 한 대 치셨다.

에잇. 시팔. 안 사주면 그만 이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때리고 그래애!”

나는 조각이 멋들어지게 새겨진 나무 대문이 부서져라 닫고 집을 나왔다. 그럼 짱의 어머니는 어떻게 사줄 수 있었는데? 어머니는 왜 안 된다고 하냐고오? 에잇, 시팔. 흰 구두가 양아치 구두라니? 시내를 돌아 다녀 봐라, 흰 구두 신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는 구두도 많으면서 내가 하나 사달라니 그렇게 아깝냐? 나도 흰 구두 신고 춤추러 다니고 싶은데. 에잇, 시팔.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확 이 집을 나가 버릴까 보다. 그래, 니들끼리 한번 잘 살아 봐라. 고작 백구두 하나 사는 건데 그것도 안돼? 에잇, 시팔. 나올 때 엄마 지갑에서 돈을 좀 빼왔으니 이거 가지고 춤이나 추러 가야겠다.

짱이 나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우리 동네 새로 생긴 초등학교를 털러 가잔다. 새로 생겨서 경비가 허술하고 교무실에 돈이 많이 있단다. 생각 좀 해보겠다 말했다. 걱정이 된다. 도둑질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는데 나의 짱이 하잖다.

누구한테 털어 놓고 싶다. 이걸 해도 될까? 털어 놓을 사람들이 없네.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분명 날 때릴 거고, 누나한테 말하면 나를 바보 등신 취급 할 거고,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면 짱 귀에 들어 갈 거고. 그러고 보니 내가 놀던 친구들은 다 멀어졌네. , 괜히 집을 나왔나 보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디데이로 정한 날, 짱은 나를 잡고 안 놓아 준다. 내가 짱의 오른팔이란다. 한밤중이 되었다.

우리는 짱의 뒤를 따라 교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 교무실 자물쇠만 따면 된다. 갑자기 경비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텅 빈 학교에 울려 퍼졌다.

튀어!”

사방팔방으로 아이들이 흩어졌다. 나는 정신없이 학교에서 빠져나오느라 어떻게 도망쳐왔는지 모른다. 어느 새 집 앞이다. 변함없이 가로등이 노란 불빛을 토해내고 있다. 나를 환히 비춰 주고 있다. 내 잘못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해맑은 노랑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무릎이 아팠다. 손바닥이 쓰라렸다. 넘어졌던가보다. 눈물이 났다. 가로등의 노랑 얼굴이 뿌연노란빛이 되었다. 집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 엄마. .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한쪽 신발만 신고 뛰어나오셨다.

아이고 이눔아. 이눔아. 어디 갔다 왔니?”

뒤따라 나오신 아버지는 내 몰골을 보고 잠시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신 듯 했다.

아무 말씀 없이 나를 보고 계셨지만 안도하신 모습이다.

. 이 새끼야. 니 때문에 엄마 아빠가 얼마나 걱정 했던지 알아? 누나가 공부를 못하겠더라. 어디서 실컷 잘 놀다 왔나보네

누나는 역시 깐죽깐죽 날 놀린다.

안도감이 밀려오니 눈물이 더 쏟아진다. 흑흑 소리가 참아보려고 해도 나온다.

어머니 손에 등 떠밀려 거실로 들어왔다.

엄마는 왜 이렇게 다쳤냐면서 씻고 방에 들어가 잠부터 자라고 하신다. 얘기는 내일 하자면서. 나는 짱을 만나기 전 까지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학교를 거의 안 나갔다. 공부가 하기 싫었고 짱이 하는 것들만 따라 하고 싶었다.

다음날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학교로 돌아갔다. 3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교감 교장 선생님도 만났다. 새로 공부를 시작했다. 누나는 아직도 날 놀린다.

, 누구는 좋겠다. 고작 중학생이 놀만큼 놀아도 보고, 집나가 보니 세상이 만만치 않지? 집이 좋지? 나는 늘 비행청소년이 궁금했는데 , , 바로 우리 집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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