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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12.21 바람 부는 날
  3. 2017.12.21 짖지 않는 개
  4. 2017.12.21 필사하는 이유
  5. 2017.01.22 연습 2
  6. 2017.01.22 연습1

비행 청소년

써보기 2017. 12. 21. 20:24 Posted by 진선애

비행청소년

오랫동안 우리 집 앞은 공터였다. 아버지가 우리 집을 짓기 시작하던 때는 우리 집 옆 터도 텅 비어 있었다. 우리 집이 지어지기 시작하고 얼마 후 옆의 공터에도 누군가에 의해 집이 지어 졌다. 두 집은 나란히 서로의 자태를 비교, 자랑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이란 형체를 갖추어 갔다. 우리 집 앞터는 정말 오랫동안 빈 채로 있었다. 내가 이 집에서 유아기를 벗어나고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가고 중학교에 갈 때 까지 공터는 나의 놀이터였다. 거기서 동네 아이들은 모여서 야구를 하고 축구를 했으며 쥐불놀이도 했다. 동네 강아지들이 아침 마다 응가를 해결하러 나오는 장소였고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아버지가 천막을 쳐서 손님들을 맞이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공간을 지키는 유일한 것은 가로등이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노란 빛을 토해내며 밤의 공터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그 노란 빛을 등으로 받으며 퇴근 후 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간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3층 건물이 세워진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참 아쉬워했다. 아버지는 항상 우리 집을 자랑하셨다. 넓은 정원이 있었으며 유럽 양식을 가져다 우리 식으로 변형하여 지었고 신기술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나도 우리 집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동네에서 제일 예쁘고 멋진 집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되었다. 우리 집 3층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우리 학교 짱이 이사를 왔다. 그 건물 주인이란다. 짱의 아버지는 금은방을 하셨다. 엄마가 누나랑 수군거린다. 경제사범이라면서. 그런 아버지를 둔 우리 학교 짱이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단다. 엄마는 짱이랑 놀지 마라는 경고를 하셨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는 자기 공부에 바빠서 나는 안중에도 없다. 나는 짱이 정말 멋있어 보인다. 무엇을 해도 다 폼이 난다. 짱은 어느 새 학교 짱일 뿐만

아니라 나의 짱도 되었다. 나는 짱이 하는 모든 것을 다 따라하고 싶다.

아버지, 돈 좀 주세요?”

그 무렵부터 이 말이 나의 십팔번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가 미워졌다.

돈 달라는 나의 요구를 거절하고 나를 붙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

제발 걔랑 놀지 마라.”

친구 따라 강남 간다잖아.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지? 이게 뭐니?”

지금 니가 그러고 놀 때야. 공부해야지. 엄마 아빠가 니 의대 보낼 거라고 기대하시던데, 너 왜 그러니?”

나는 식구들의 충고가 정말 듣기 싫다. 짱이 내 식구였으면 좋겠다. 나는 짱이 입는 옷을 따라 입었고 짱이 하는 모든 행동을 따라 했으며 짱이 시키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춤이 추고 싶다. 나의 짱은 춤꾼이다. 짱은 춤을 추면 더 멋있어 보인다. 나는 춤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짱만큼 멋진 춤을 출거다.

어느 날 짱이 하얀색 구두를 신고 왔다. 짱이 신은 하얀색 구두는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같다. 어머니를 졸랐다.

나도 흰 구두 사주세요? 제발, 어머니 나도 흰 구두 사주세요?”

어머니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놈아. 니가 중3이다. 3이 무슨 백구두니, 백구두는 어른들도 잘 안 신는 구두야!

이눔아, 백구두는 양아치들이나 신는 구두야. 제발 정신 차려라. 니가 왜 이러니?”

어머니는 이 말과 함께 내 등을 철썩 한 대 치셨다.

에잇. 시팔. 안 사주면 그만 이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때리고 그래애!”

나는 조각이 멋들어지게 새겨진 나무 대문이 부서져라 닫고 집을 나왔다. 그럼 짱의 어머니는 어떻게 사줄 수 있었는데? 어머니는 왜 안 된다고 하냐고오? 에잇, 시팔. 흰 구두가 양아치 구두라니? 시내를 돌아 다녀 봐라, 흰 구두 신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는 구두도 많으면서 내가 하나 사달라니 그렇게 아깝냐? 나도 흰 구두 신고 춤추러 다니고 싶은데. 에잇, 시팔.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확 이 집을 나가 버릴까 보다. 그래, 니들끼리 한번 잘 살아 봐라. 고작 백구두 하나 사는 건데 그것도 안돼? 에잇, 시팔. 나올 때 엄마 지갑에서 돈을 좀 빼왔으니 이거 가지고 춤이나 추러 가야겠다.

짱이 나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우리 동네 새로 생긴 초등학교를 털러 가잔다. 새로 생겨서 경비가 허술하고 교무실에 돈이 많이 있단다. 생각 좀 해보겠다 말했다. 걱정이 된다. 도둑질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는데 나의 짱이 하잖다.

누구한테 털어 놓고 싶다. 이걸 해도 될까? 털어 놓을 사람들이 없네.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분명 날 때릴 거고, 누나한테 말하면 나를 바보 등신 취급 할 거고,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면 짱 귀에 들어 갈 거고. 그러고 보니 내가 놀던 친구들은 다 멀어졌네. , 괜히 집을 나왔나 보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디데이로 정한 날, 짱은 나를 잡고 안 놓아 준다. 내가 짱의 오른팔이란다. 한밤중이 되었다.

우리는 짱의 뒤를 따라 교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 교무실 자물쇠만 따면 된다. 갑자기 경비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텅 빈 학교에 울려 퍼졌다.

튀어!”

사방팔방으로 아이들이 흩어졌다. 나는 정신없이 학교에서 빠져나오느라 어떻게 도망쳐왔는지 모른다. 어느 새 집 앞이다. 변함없이 가로등이 노란 불빛을 토해내고 있다. 나를 환히 비춰 주고 있다. 내 잘못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해맑은 노랑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무릎이 아팠다. 손바닥이 쓰라렸다. 넘어졌던가보다. 눈물이 났다. 가로등의 노랑 얼굴이 뿌연노란빛이 되었다. 집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 엄마. .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한쪽 신발만 신고 뛰어나오셨다.

아이고 이눔아. 이눔아. 어디 갔다 왔니?”

뒤따라 나오신 아버지는 내 몰골을 보고 잠시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신 듯 했다.

아무 말씀 없이 나를 보고 계셨지만 안도하신 모습이다.

. 이 새끼야. 니 때문에 엄마 아빠가 얼마나 걱정 했던지 알아? 누나가 공부를 못하겠더라. 어디서 실컷 잘 놀다 왔나보네

누나는 역시 깐죽깐죽 날 놀린다.

안도감이 밀려오니 눈물이 더 쏟아진다. 흑흑 소리가 참아보려고 해도 나온다.

어머니 손에 등 떠밀려 거실로 들어왔다.

엄마는 왜 이렇게 다쳤냐면서 씻고 방에 들어가 잠부터 자라고 하신다. 얘기는 내일 하자면서. 나는 짱을 만나기 전 까지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학교를 거의 안 나갔다. 공부가 하기 싫었고 짱이 하는 것들만 따라 하고 싶었다.

다음날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학교로 돌아갔다. 3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교감 교장 선생님도 만났다. 새로 공부를 시작했다. 누나는 아직도 날 놀린다.

, 누구는 좋겠다. 고작 중학생이 놀만큼 놀아도 보고, 집나가 보니 세상이 만만치 않지? 집이 좋지? 나는 늘 비행청소년이 궁금했는데 , , 바로 우리 집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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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

써보기 2017. 12. 21. 20:23 Posted by 진선애

바람 부는 날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나그네가 문을 두드리며 바람을 피해 한 잔의 커피를 부탁할 것 같은 날이었다. 그 날. 옆집 소명이 엄마가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엄밀히 말해서 바로 옆집은 아니다 . 목동 아파트 35평형이 모여 있는 동은 여타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35평형대의 건물 구조가 아니다. 복도식도 아니요 계단식도 아닌 두 개가 섞여 있는 건물 구조이다. 3개 호수가 한 라인을 이루고 중간 집은 복도 형이고 양 끝집은 계단 형인 그런 구조이다. 소명이네와 우리 집은 대문을 마주보고 있는 양끝 집이다. 소명이 엄마와 나는 한 살 차이이다. 내가 한 살 더 많은 언니이며 같은 동향 사람이다. 친정과 시댁을 모두 대구에 두고 있는. 벨을 누른 소명 엄마는 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갈 것 같은 핼쑥하고 파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고 금방이라도 그 큰 눈에서는 눈물이 굵은 빗방울처럼 떨어질 것 같았다.

, 소명 엄마, 어서 들어와요. 우리 집에 놀러 처음 오시죠? 바람이 많이 불어요.”

이렇게 불쑥 찾아 와서 미안해요. 들어가요 될까요?”

아유, 내가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잘 왔어요.”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소명엄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바람을 뚫고 복도를 지나 우리 집 까지 온 것이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나는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식탁 위를 바삐 치우며 호들갑스런 미소로 소명엄마를 안심 시키듯 말했다.

커피 한잔 주세요. 커피 마시고 싶어서요. 집에 커피가 떨어졌어요.”

나는 전기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스위치를 넣었다. 그러면서도 등 뒤의 센스는 풀로 작동하고 있었다. 여자의 직감은 무서운 거다. 저 까칠한 여자가 그냥 온 것은 아닐 거라고 커피 주전자가 증기를 토해내며 나에게 속삭인다. 소명엄마는 평범한 전업주부가 아니다.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맡아서 대본을 써주는 방송 작가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소명이 언니가 우리 집 아이와 동갑으로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살게 되었다는 인연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바빠서 인지 잘 보이지 않았고 마주칠 때는 항상 내가 먼저 말을 거는 편이었다. 소명 엄마는 말이 없는 사람인지 말이 하기 싫은 것인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재수 없는 여자라고 흉도 봤다. 그런 까칠하고 속모를 여자가 우리 집 벨을 눌렀다. 파리하고 핼쑥한 모습으로. 나는 뭐라고 말을 붙일까 냉장고 속 과일을 꺼내면서 궁리했다.

소명 엄마 , 잠깐만 기다려요. 과일 깎아 커피하고 같이 가져갈게.”

소명엄마는 식탁유리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안색이 참 안 좋네. 그 집은 걱정거리가 없어 보이던데.”

나는 어렵게 첫 운을 띄웠다.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일 수 있다. 소명이네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그 집에서는 자주 소명 엄마의 비명 같은 고함 소리가 집 밖을 넘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소명이 언니는 우리 아이한테 이런 말도 했다.

엄마가 내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안 된다 했어. 친구들을 데리고 가면 야단맞아

우리 애는 이게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나에게 전했고 나는 다시 남편에게 전했다.

이상한 집이다 그지? 하이고, 도도한 척은 혼자 하면서 집을 안 치우고 사나봐. 아무리 지 일이 바빠도 그렇지. 방송작가가 무슨 벼슬이라고 애들 친구도 못 오게 한데? 그러면서 지 애는 다른 집에 놀러 보내고 말이야.”

사과를 한입 베어 문 소명엄마가 갑자기 눈물을 툭하니 떨구었다.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놓친 뻔 했다.

아이고, 소명 엄마. 무슨 일이래? 왜 울어요. 울지 말아요. 말해 봐요, 내가 들어 줄게!”

오늘 소명이 상태에 대한 최종 결과를 듣고 왔어요. 그리고 제 잘 못이 아니래요. 그런데 힘들어요, 죽고 싶어요. 아이도 죽이고 나도 죽고. 인생이 이렇게 괴로운 것 인줄 몰랐어요.”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소명엄마가 털어 놓는 말들로 그간의 모든 퍼즐이 한꺼번에 맞추어졌다.

소명이는 아기 때부터 늦되었다. 아이들이 길 때 뒤집기를 하고 아이들이 걸어 다닐 때 기어 다녔다. 아이들이 뛰어다닐 때 앉기를 할 수 있었다. 걷지를 않아 별별 검사를 다 해 봤다. 태어나서 4년이 되어 갈 무렵 소명이가 걷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언니가 한글을 저절로 깨우쳐 소명이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만이 감지할 수 있는 이상함이 조금씩 아이한테 보이기 시작했다.

소명아 우리 모양 맞추기를 할까?”

이렇게 시작된 놀이는 소명 엄마의 고함으로 끝이 나거나 소명이의 깽판으로 끝이 나버렸다.

소명이가 모양을 맞출 수 없어서 엄마가 가르치다, 가르치다 짜증이 돋아 소리치게 되거나 소명이가 엄마의 아니야 , 틀렸어라는 소리에 분을 참지 못하고 판을 뒤엎어버림으로 끝이 났다. 학교 들어 갈 나이가 되어 한글을 가르치면서 다시 한 번 온 집이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소명이가 글자모양을 잘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소명이는 학교에 가서도 골칫거리가 되었다. 급기야 담임 선생님이 소명엄마에게 전화를 해 지금 당장 집으로 데리고 가라는 말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 소명이 손을 잡고 소명이 같은 아동들을 진단해 준다는 곳으로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그 결과를 오늘 소명엄마가 듣고 왔다.

 

털어 놓고 싶고 어디다 하소연 하고 싶은데 주위에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찾아 왔어요.

의사선생님이 저보고 아이를 훌륭하게 잘 키웠데요, 저보고 할 만큼 했데요. 저는 모든 것이 제 책임인줄 알았어요. 제가 무엇을 잘못 했을까 임신 기간부터 지금까지 시계바늘을 돌리면서 매일 생각해봤어요. 내 잘 못이 아니라는 의사 선생의 위로의 말에 안도하는 제 모습이 싫었어요. 왜 하필이면 내 아이일까요? 물었더니 의사 선생님이 소명이는 앞으로 나가는 아이이니 큰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조금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니 괜찮다고 했어요. 지체가 아니라고 했어요.”

그동안 나는 소명엄마를 오해하고 있었다. 나도 같이 눈물이 나왔다. 자식을 키우는 어미로서 같은 어미인 소명 엄마를 보고 있으니 내 가슴도 아파왔다. 소명이는 인지기능치료를 시작한다.

소명이가 정서에도 문제가 있데요, 부모의 몰이해와 아이의 눈높이만큼 행동이 따라 주지 않아 소명이 내부에는 분노가 쌓여 있데요. 그걸 풀어줘야 한다고 해서 놀이 치료도 같이 받아요.”

소명이네로 이런 치료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소명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니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한 잔의 커피를 더 타서 들고 오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소명 엄마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저 가녀린 몸에 그 짐을 오롯이 지고 왔을 거라 생각하니 짠하여 보였다.

마주칠 때 마다 살이 더 빠지는 듯 보여 날씬한 것들이 더 하다니까라면서 흉 본 일이 부끄러워졌다.

소명엄마, 사과 더 먹을까? 이제 살 좀 찌워봐. 그래야 힘이 나서 소명이도 더 잘 보지. 너무 걱정 말아요, 천천히 간다고 생각하랬잖아. 인생 길잖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요. 나는 하는 일 없잖아. 그나저나 나는 방송작가가 무슨 일하는지 정확히 잘 몰라. 그 얘기 좀 해 봐. 이제 소명이 걱정은 좀 접어놓고.”

나는 더 수다스럽게 소명엄마에게 말을 붙였다. 저 조그만 여자의 창백한 얼굴에 웃음이 묻어나니 큰일을 하나 해 낸 듯하다. 창으로 새어들어 온 바람 소리와 우리의 수다가 어울려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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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지 않는 개

써보기 2017. 12. 21. 20:21 Posted by 진선애

기찻길 옆 오막살이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나이 오십을 넘긴 나는 요즘도 이 노래를 곧잘 흥얼거린다. 내 평생의 유일한 시골 생활. 나는 아직도 그때의 호기심과 설렘을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는 종업식 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전학절차를 밟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발령으로 경상북도 영천군 옆의 작은 면인 신령면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포장 이사가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손수 이사준비를 하셨다. 나는 동생들과 시골로 간다는 생각에 들떠 친구들에게 이사를 자랑하고 다녔다.

나 이사 간다. 우리 집이 신령을 이사한 데. 좋겠지? 부럽지?”

철없던 나는 시골생활이 어떠한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고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고 한숨 지으셨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차를 잘 타지 못한다. 차멀미가 심하기 때문이다. 포장이 잘 된 고속도로로 다닐 때도 차멀미를 하는데 비포장 도로였던 신령까지는 말해 무엇하리요. 나는 거의 초죽음 상태로 신령에 도착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엄마가 입가에 대어 받쳐 주고 있던 비닐봉지와 멀미의 잔해가 남은 텁텁한 입 안의 메슥거림은 생각하기만 해도 진저리가 쳐진다. 그러나 멀미가 시작되기 전의 비포장도로는 멋있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춘향이 빤스가 걸려 있네.”

내 나이대의 누구나 알고 있는 저질 개사 동요.

신령까지 가는 비포장 도로가는 춘향이 빤스가 걸려 있다는 미루나무가 무대 위의 미스코리아처럼 쭉 벗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미루나무를 보며 이도령이 가지러 올라가다 떨어질 만하네.’ 라는 생각을 했다. 신령면 한복판에 도착하였다. 아버지는 경찰지서의 지서장이셨다. 준비되어 있는 사택은 신령면 한복판에 있는 목욕탕 옆 한옥이었다. 파란 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있었고 마당을 가로질러 맞은편으로 시멘트가 잘 발라진 높고 넓은 단 위로 펌프가 있었다. 그 펌프단 옆으로 길쭉한 직사각형형태로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엌이 맨 위쪽에 그 아래에 안방 , 대청마루, 건너 방 그리고 다시 또 방 이런 순서였다. 이렇게 세로로 길쭉한 집의 마무리는 쭉 달라붙은 툇마루가 하고 있었다. 난방에 신경을 썼는지 툇마루 안쪽으로는 미닫이문들이 완벽하게 일렬로 쭉 서있었다. 여름에는 미닫이문들을 활짝 열어 놓고 겨울에는 꼭꼭 닫아 두었다. 툇마루에 올라 미닫이문을 통과하면 안방이든 대청마루든 건너 방이든 또 그 건너 방이든 들어갈 수 있었다. 툇마루 아래로는 시멘트가 잘 미장되어 있어 그 밑으로 신발을 감출 수 있었다. 부엌은 마당보다 낮은 바닥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민속촌이나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문이 달려 있었고 그 문은 안쪽에서 나무를 가로로 밀어 잠그는 잠금장치가 있었다. 자기 전에 반드시 이 문을 꼭 단속하고 잤다. 이 일은 어머니의 가장 큰 매일의 숙제였다. 부엌문을 열고 계단을 두 개 내려가면 부엌바닥을 디딜 수 있었고 오른 쪽으로 연탄아궁이가 두 개 있었다. 부엌문 정면과 왼쪽으로는 시멘트로 잘 미장된 부뚜막이 있었다. 그 위로 곤로와 찬장이 올려졌다. 부엌바닥은 시멘트로 잘 마감되어 있었고 하수구멍까지 있었다. 아궁이 옆 왼쪽으로 안방에서 바로 나올 수 있는 작은 문도 있었다. 겨울철에는 여기가 부엌이면서 지금의 욕실이 되었다. 어머니가 큰 찜통에 물을 데워 놓으면 식구들이 차례로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았다. 집 뒤쪽으로 건너 방과 끝 방의 연탄아궁이가 있었고 재래식 변소가 따로 살짝 떨어져 위치하고 있었다. 시골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이 변소 가는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되도록 밤에 변소를 가지 않게 조심했고 어쩌다 가게 되면 상부상조, 십시일반 하였다.

오늘은 내가 따라 가주니 다음번엔 니도 따라 와야 한데이.” 손가락 걸며 약속하고 그 약속이 똥 약속이 되어 버리기도 하고. 연년생들인 삼형제는 그렇게 사시사철 변소 갈 때마다 서로에게 약속과 배신을 일삼았다.

대문을 열면 펌프대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나지막한 담을 지나면 높다란 철길이 자리 잡고 있다. 철길 밑을 따라 작은 도랑이 흘렀고 우리 집에서 도랑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문이 있었다. 나와 동생들은 그 문으로 나가 도랑 속을 살피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도 했다.

작대기로 도랑 속을 파헤치거나 내 새끼손가락보다 더 작은 물고기들을 지켜보면서.

도랑 옆 땅뙈기조차 놀리는 법이 없던 시골 사람들은 그곳에 호박이며 고추 같은 것을 심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들을 따라 호박을 심었고 여름날 우리 집 반찬으로 호박잎이 된장과 함께 매일 올라 왔었다. 세로로 길쭉한 일자형 집의 맞은편으로 빈 돼지우리가 있었고 나무 기둥위로 슬레이트 지붕만 덩그러니 올린 창고 같은 것이 있었다. 농부의 집으로 시작한 이 집은 어쩌다 경찰지서장의 사택이 되었고 다시 내 어머니의 손에 의해 도시문명의 색이 덧입혀졌다. 어머니는 펌프만 있던 펌프대에 수도를 넣고 수돗물이 잘 나오도록 모터도 달았다. 수도는 가뭄에도 우리 집에 맑은 물을 공급해준 오아시스가 되었다. 경상북도의 면 소재지 까지 오는 기차는 완행이거나 석탄이나 목재를 가득 실은 화물 열차였다. 몇 번의 완행이 지나갔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알 수 없지만 완행이 지나갈 때 마다 나와 동생은 열차 안 승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화물 열차가 지나가면 동생들과 마당으로 나와 기차 칸수를 세면서 놀았다. 기차는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달렸다. 처음에는 기차 소리에 익숙지 못하여 잠을 설쳤다. 유난히 예민했던 어머니는 밤잠을 못 자 한동안 퀭한 눈을 하고 다니셨다. 그러나 어느덧 기차 소리는 자장가가 되어 기차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질 정도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잠을 청하기 위해선 라디오나 음악을 작게 틀어 놓는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잠을 쉽게 자지 못한다. 신령면 한복판에는 어김없이 오일장이 들어섰다. 우리 집은 그 오일장이 들어서는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새벽부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장돌뱅이가 모여드는지 천막이 쳐지고 임시 점포가 늘어선다. 장이 시작되면 온 동네가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그 냄새를 따라 킁킁거리면서 나와 동생은 사냥개처럼 장터를 돌아다닌다. 파장이 되고 해가 넘어가 어두컴컴할 때까지 이리저리 쫓아다니다 어머니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알록달록 옷도 팔고, 차력하면서 약도 팔고, 형형색색 채소도 팔며, 비릿한 생선도 팔고, 모든 짐승 고기와 온갖 군것질거리가 장터 바닥에 널려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때 내가 어머니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그러다 영영 장돌뱅이가 된데이. 어디를 그렇게 돌아 댕기노.”였다. 정착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진리인 어머니에게 장돌뱅이는 큰 문젯거리였다. 모든 것을 다 장돌뱅이에 비유하면서 나를 나무라시곤 했다. 그 어미에 그 딸이 아니랄까봐 나도 내 아이들에게 장돌뱅이를 들먹이면서 나무라곤 한다. 아이들이 늦게 귀가를 하면 꼭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장돌뱅이가 될래?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냐!”

장돌뱅이가 나쁜 것, 무서운 것, 두려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골 생활은 잡종 개 메리를 들이면서 적응에 박차를 가했다. 메리는 누렁이도 아니고 검둥개도 아니었다. 발 부분은 흰색이 가미된 누렁이었고 등판은 검둥개가 슬쩍슬쩍 자신의 핏줄을 보여주는 누렁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았던 메리는 마당에서 놀다가 저녁이 되면 목줄로 돼지우리 옆 개집에 묶였다. 메리는 순둥순둥 주인을 잘 따르는 똥개였다. 잘 짖지도 않고 항상 꼬리가 살랑살랑거리는 꼬리 치는 개였다. 어느 날 메리가 사고를 쳤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해는 마늘 농사가 흉년이었다. 그해 마늘 농사를 지었던 농부들은 다들 울상이 되었고 마늘 값이 금값만큼 비싸졌다. 농촌에도 도둑이 있었다. 나는 그해 여름에 처음 알았다. 농촌의 도둑은 농작물을 훔쳤다. 우리 집 열린 창고는 동네 농부들의 창고로 사용되었다. 마늘이 널리기도 했고 양파가 들어차기도 하며 고추가 빨간 맛을 뿜어내며 양탄자처럼 깔리기도 했다. 그해 여름 우리 집 창고에는 마늘이 주인공이 되었다. 바닥에 널리고 슬레이트 지붕을 받치는 석가래 아래로 처녀 댕기 머리처럼 쭉 달렸다. 나와 엄마는 잠귀가 귀신처럼 밝다. 누군가가 뽀스락 거리기만 해도 단번에 들었던 잠이 깬다. 그 날의 오밤중, 나는 낯선 소리에 잠이 깨어 엄마를 소리 높여 불렀다. 그 낯선 소리는 기차소리도 아니고 아버지 코 고는 소리도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낯선 소리였다. 소름이 돋고 무서워져서 안방의 엄마를 소리 높여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이 소리와 함께 후다닥거리는 더 큰 낯선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아버지가 차례로 깨어서 나를 진정시키고 낯선 소리의 정체를 찾아 나섰다.

우리 집에 널리고 달려있던 마늘의 반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것은 아버지이다. 직업정신이 발동한 것이다. 급히 비상전화를 돌리고 동네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마늘 도둑은 우리 집 창고의 마늘을 훔치다 엄마를 찾는 내 소리에 놀라 담을 넘어 철길로 도망을 갔다. 그 날 밤 마늘 도둑들은 신령 면의 마늘들을 모두 훔칠 계획이었던 것일까. 많은 집에서 마늘이 없어졌고 그 마늘들은 기차역 부근 주인 없는 낡은 트럭에서 발견되었다. 똥개 메리는 도둑을 보고도 짖는 대신 꼬리를 쳤던 거다. 정신없던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메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니가 개가, ? 이놈의 똥개가 짖지도 않고, 확 밥을 안 주삘라.”라는 구박을 받았다. 이 구박은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지서장님예. 개는 주인 닮는다 하잖아예. 지소장님이 맘이 좋으니 개까지 아무한테나 다 꼬리치는 거라예. 짖지도 않고.” 란 칭찬의 소리에 멈추었다. 우리 집 똥개 메리 대신 동네 마늘 도둑에게 짖었던 것은 나였다. 나의 밝은 잠귀 덕에 동네 농부들의 마늘을 오롯이 다 찾을 수 있었다. 한동안 마늘 도둑과 짖지 않은 개 메리, 그리고 내 잠귀 얘기는 동네에 회자되었다. 그리고 여름이 거의 지나가던 어느 날, 어머니가 기겁하며 울고불고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도시여자였다. 한 번도 시골 생활을 해 본적이 없는 전형적인 그 시대의 배운 여자였다. 이 시골 생활은 어머니에게는 버거운 생활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겨우 견디고 있었다. 어머니는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할 수 없었다. 칼로 닭의 목을 내리치거나 갓 잡은 고기를 다듬는 일을. 학교에서 돌아 와 보니 어머니는 마당을 빙빙 돌면서 울었다 웃었다 하고 계셨다. 동생들과 나를 보자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우리를 붙들고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소리소리 치셨다. 그러나 호기심이 고양이 보다 컸던 나는 붙잡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부엌으로 쪼르륵 달려갔다가 식겁하고 뛰쳐나왔다. 어머니가 왜 울고 웃고 했는지 알았다. 부엌 부뚜막에는 금방 잡은듯한 소머리가 덩그러니 고삐도 끼워진 채 올려져있었다. 삶은 돼지 머리는 본적이 있지만 금방 잡은 듯 털과 고삐가 그대로 있는 소머리는 그 때 처음 봤다. 어머니도 그랬던 거다. 아버지는 그걸 인편으로 보내면서 잘 다듬어 삶으라는 부탁도 했던 거다. 아버지가 소머리를 보냈단 소문은 금방 퍼져 이웃 농부의 아내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 왔다. 구경하려고. 울고 웃는 어머니를 달래서 동네 아낙들이 함께 소머리를 다듬었다. 수돗가에서, 물을 펑펑 틀고, 합심하여 소머리를 다듬었다. 다듬어진 소머리를 끓는 물에 넣고 우려내어 소머리 곰국을 만들었다. 온 동네가 몇 끼니를 소머리 국으로 해결하면서 몸보신을 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곰국을 입에도 대지 못하였고 곰국 끓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난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게 되셨다.

농작물 도둑이 극성을 부렸던 내 초등 3학년의 여름은 소머리를 우려내는 누린내와 함께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우리 집 똥개 메리는 여전히 아무에게나 꼬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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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하는 이유

스크랩과 필사 2017. 12. 21. 19:51 Posted by 진선애

 

 

 

 

 

연습 2

써보기 2017. 1. 22. 10:35 Posted by 진선애

1.

산속 바위 위에 앉아 있다.

햇빛은 화살같이 나에게 꽂히며 나는 그 화살을 통과시키는 웜홀이 되었다.

세월의 고통도 유쾌함도 세월의 슬픔도 기쁨도 모두 통과 시키는 웜홀이 되었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왔을까.

아마도 모든 것을 통과시키며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삶을 추구했나 보다.

 

2.

설거지를 하고 있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그릇이 싱크에서 선반으로 옮겨진다.

고추장도 묻고 밥알도 묻고 내가 튀긴 침의 파편도 묻어 있을 그릇의 표면이 제 모습을 찾았다.

더러워졌다 깨끗해 짓기를 반복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가 보다.

그릇도, 인간도, 내가 입은 옷들도, 산 속의 나무들도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깨끗함을 찾아 간다.

 

3.

우리 집 반려견 노을이가 히컵송을 부르며 잔다. 유기견이였다. 어떤 인간이 학대를 했을까.

사람손이 두려워 오줌을 질질 싸던 노을이. 말 못하니 알 길이 없다. 개가 개를 학대한 꼴이다. 우리 가족에게만 충성심을 보인다. 무슨 개가 이럴까? 개는 아무에게나 꼬리쳐야 하는데.

이제는 이게 좋다. 나만의 무기를 가진 것처럼. 나만을 바라보는 노을이가 좋다.

 

4.

아이들이 부른다. 엄마.

힘이 들 때는 엄마지만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엄마 소리가 싫다. 귓구멍을 막고 싶다.

엄마란 소리가 오장 육부를 휘저어 놓는다. 책임을 지라는 소리로 들린다.

기분이 좋을 때는 엄마란 말이 좋다. 천금만금을 주어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리다.

뿌듯한 소리다. 감사의 소리다.

싫은 엄마 좋은 엄마가 켜켜이 쌓여 종국엔 위대한 어머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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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1

써보기 2017. 1. 22. 10:32 Posted by 진선애

1.

나는 기억한다. 처음으로 친구 돈 오십 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던 숨 막히던 순간을.

핑크색 랩 치마에 리본달린 에나멜 검정구두 작은 꽃무늬 리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부잣집 딸이었다. 옷도 잘 입고 공부도 잘 했고 부회장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친구 필통 속 오십 원이 탐이 났다. 치마 뒷주머니에 오십 원을 쑤셔 넣었다. 큰 걸음이라도 걸으면 들킬 것 같았다. 종종 걸음으로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던 나는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2.

추억 속에 자리 잡은 개들이 있다. 쫑이와 레오. 아버지가 쫑이를 데리고 오기 전 날 하신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 희한하게 생긴 개가 있다. 주뎅이가 길쭉하고 다리는 짧은데 허리는 엄청 길다. 다음 날 검은 색의 길쭉한 개가 우리 집에 왔따. 지금은 안다. 쫑이가 닥스훈트란 것을. 그때는 그냥 검둥개였다. 검둥개 쫑이는 마당에 있는 개집에서 지냈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쫑이가 없다. 개장수에게 팔았단다.

레오는 정말 작은 새끼 때 우리 집에 왔다. 너무 작아 한동안 집안에서 길러졌다. 레오는 잡종개였지만 사자 같은 멋진 갈퀴털이 있었다. 청회색의 갈퀴털을 휘날리면서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나를 반기던 레오. 그래서 이름이 레오였다. 레오는 순식간에 중대형개가 되었다. 레오도 개장수가 데려 갔다. 조금 더 잘해 줄 걸, 그때는 몰랐다. 반려견 문화가 없었잖아. 미안해 쫑아, 레오야. 너희들을 무서워하고 귀찮아 한 것을.

 

3.

나는 기억한다. 수줍음과 앳됨을 빨갛게 볼로 피어 올리며 들어섰던 기숙사 입소의 첫날을 기억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내 뒤에서 제사상의 병풍처럼 서계셨다. 침대 4개 작은 책상 4개 작고 길쭉한 문짝이 4개 있는 붙박이장. 짙은 밤색의 쪽마루. 은색 라디에이터, 그 위의 창문.

그 창문 유리로 3월의 봄 햇살이 뚫고 들어 왔다. 통성명을 하고 고향을 묻고 학과를 말한다. 아침기차로 서울로 온 나는 몹시 피곤했다. 침대에 시트를 깔고 가져온 이불과 베개를 놓아 주는 어머니 손길의 애틋함을 기억한다. 독립이다. 부모 밑 19년 생활을 벗어나 20살 인생의 첫 출발은 기숙사방 창문을 뚫은 봄 햇살의 강렬함이었다.

 

4.

배가 아파온 나.

첫아이가 나오려한다. 나는 그때의 떨림과 시원함을 기억한다. 드라마 속 산모는 소리를 지른다. 나는 의사의 지시로 소리는커녕 큰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힘을 낭비하지 말란다.

간호사가 왔다. 관장을 하고 갔다. 속안의 모든 것을 비워 내고 누운 분만대기실의 침대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그럴 수밖에. 2월이잖은가. 첫아이라 오래 걸릴 거란다. 이상하다 배에 힘이 들어간다. 간호사를 급하게 불렀다. 왜 자꾸 채근 하냐 땍땍거리던 간호사가 다급해 졌다. 다리 사이로 아이가 내려왔다. 의사가 달려왔다. 아이의 첫 울음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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